7기 송이 예리의 아빠입니다.모두들 건강하시지요. 아이 둘을 보내고 저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송이 엄마도 똑 같습니다.어제 밤에 갑자기 송이, 예리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순간 눈가에 촉촉한 무언가가 적시기에 방에서 나왔습니다.그리고는 oss 홈페이지,송이예리 동영상을 봤습니다.우리 애들이 거기서 똑같이 잘 놀고 있습니다.마치 옆에서 뛰노는 것처럼…. . 송이 엄마의 강한 믿음으로 남들은 따로따로 보내는데 한꺼번에 둘을 보내지만 가슴은 두 배로 뚫린 느낌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저보다 더 큰 판단은 잘했고 정확했습니다. 오성식 선생님과 처음 통화와 만남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고, 그때 송이 엄마는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결정했고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둘을 한꺼번에? 그래서 유학간 자식을 둔 동료,선후배에게 연락취하고 들어보니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인 것 보다 많았습니다. 더욱 더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뭔가에 이끌리듯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oss에 대한 저의 믿음은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송이는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쉽게 결정하는 듯 보였습니다. 둘째 예리는 언니가 간다기에 또 다른 학교친구에게 자랑하듯 철모르게 가는 것 같아 수시로 같이 있자고 많이 꼬셔보았지만 소풍가듯 들떠서 자기도 유학갔다 와서 아빠를 더욱 구박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참고로 저의 r 발음이 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에게 배우는 발음과 차이가 많이 있나 봅니다.) 저는 제발 부탁이니 “구박 많이 해주라” 라고 대꾸했으나 뭔가 이 배신감 같은 것이 가슴 한 켠을 눌렀습니다.이 애들이 벌써 컸구나 하는 생각과 서운함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농담하듯 애들하고 같이 갔다와 하면 송이 엄마는 송이 아빠를 위해서 oss 에 보낸다고 도리어 웃음으로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부인의 배려가 깊다고 믿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무척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계속 기러기 아빠하면 어떻게 하나’하고 생각이 맴 돌았기에, 지방에서 교육여건이 서울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최근에 뼈저리게 느꼈기에 저는 oss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태풍을 피해 하루 전에 서울에 올라갔다가 인천공항에 1시간 일찍 도착해보니 oss 선생님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이제는 정말 유학을 가는 구나 느낌이 왔습니다.매우 많은 우리네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oss식구가 많이 있어 위로가 되었고 느낌이, 믿음이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신혼 때 빼곤 항시 아이들이 분신처럼 있었는데 송이 엄마와 둘 뿐이었습니다. 비교적 잠을 잘 자는 편인데 거의 일주일 동안 대략 4시간 정도 밖에 잘 수가 없네요. 그것도 수시로 깨워나곤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아이들은 적응을 잘하는 것 같고, 홈 스테이에서도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메일을 보내니 한 시름 놓았습니다. 일하면서 틈틈이,집에서는 매일 클럽게시판을 들락거리고 ,이 메일 수시로 체크하고,동영상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그렇게 보냅니다. 그래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 몸살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정말로 oss 대단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못 할 것 같은 데 척척 해결하는 것을 보니 oss 멋져 보입니다. 송이 엄마가 오성식 선생님 대단하다고 저렇게 하고도 펄펄 날아다닌다고 합니다.동감입니다. 열정적인 선생님의 oss 딸 아들이 50여명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갑니다. 이 몸살은 송이예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예리가 저를 구박하는 그 시점에서 oss 믿음의 꽃이 활짝 핀 날 완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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