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얼른 자라면 부모님들이 제게 하셨듯이 부모를 떠나 멀리 보내 독립심도 생기게 하고예전과 달리 시대에 맞추어 영어권의 견문도 넓힐 겸 보내리라 맘먹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인 저는 직업이 있어 아이들을 맡겨 놓고 제가 해야 할 병원 사업에 매진할 생각이었기에 더 열심히 보내보고픈 또 다른 속생각이 있기도 했었어요. 아이들을 떼어놓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초등 2학년때부터 형제를 묶어 방학때마다 겨울이면 제일 추운 곳으로 여름이면 제일 더운 곳으로 극기 훈련 캠프를 보냈었지요. 당시 지방에 살 때라 조기 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할 때 서울로 다니면서 좋은 곳을 찾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구요. 대치동에서 시험도 치르고 당시 두 형제를 보내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라고 생각했던 초등 4,5학년 올라가는 두 아들을 그렇게 보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너무나 엄격한 캐나다의 생활로 인해 돌아온 아들들이 얻어온 것은 장점만 생각하고 보냈던 이면에 감추어져 걱정되던 단점들이었고 그것들이 고스란히 제 자식의 앞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란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육체적 정신적 학습적인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어야하는 것도 저희들의 몫인지라 아이들의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함과 동시에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부의 인생에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결론짓고 안식년을 1년 갖기로 하고 지체없이 바로 지금의 메일플릿지로 가게 되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해리후기 학교 교장선생님과도 친하게 지내며 아들들의 홈스테이 식구들과 우정도 나누며 행복한 기억을 새롭게 심어주려 노력했었고 한편으로는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냉철하게 판단해보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들들과 저희 가족들은 한 때의 실망감을 극복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동윤이가 메이플릿지에 가 있는 지금 .. 말이 없는 큰아들도 사랑하는 막내 동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지라 항상 화상 통화시간이 등교 시간과 겹쳐 1분이 바쁠 터이지만 꼭 화면에 얼굴을 비추이고는 하더니 어느날인가는 ' 엄마 동윤이는 참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예요 ' 라는 말을 남겨 저에게 기쁨과 동시에 먹먹함도 주었더랬어요 여름 캐나다 여행 이후 사진을 보면서도 캐나다에서의 추억에는 도리질을 하던 아이들이지만 동윤이의 여러가지 면을 종합해보면서 '동윤이는 정말 잘 보내신 것 같아요 ~~'라는 말을 이제는 자주 해주고 있답니다 한 술 더 떠 '우리도 이렇게 OSS로 보내주시지 그러셨어요 '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구요. 말없이 지켜봐온 형들이 동윤이가 얼마나 즐겁고 힘든 내색없이 잘 지내는가에 대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 자신들의 어릴적 상처 치유에도 도움되고 있다고 생각드는 요즘입니다 돌아와서는 동윤이 덕분에 어릴 적 좋을 수도있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도 해보면서 자신의 형제들 중 가장 아끼는 동생이 캐나다라는 나라에서 사랑도 많이 받고 많은 배려를 받고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캐나다에 대한 인식이 조금 개선되기도 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 한 편 더 남았어요^^ 기다려주세요^^ 토요일이라 마음은 바쁘고 일도 하면서 해야하기에 잘 전달되고 있나 모르지만 마무리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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