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6남매를 두셨습니다 저는 지난 이야기 하는 것을 많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아름다운 과거와 지금은 동경만 하는 시골 전원생활의 전인적 교육 환경에서 최대한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오늘날에 이르른 것일테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지난 이야기로 거슬러 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 간 추억은 저처럼 연탄배달로 용돈을 벌었거나 해운대 백사장에서 피서객들 대상으로 핫도그를 팔았던 경험도 어렸었기에 신기한 경험으로만 생각했을 뿐 전혀 힘든 지도 모르게 재밌고 신나는 놀이 중의 하나로 회상되어 때로는 자랑스럽기도 하지요^^ 부모님은 공무원으로 6남매를 키우기가 힘드셨겠지만 그 당시에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은 누구나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이 가장 중요한 당면문제였었고 그러기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위화감이 없는 상태라 조금 부족한 것이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부끄럽기는 커녕 심지어는 재미있는 생활로 여겼었고 ( 부모님은 힘들었을 터인데 제가 철이 없었던 게지요^^) 어쩌다 급식 당번을 하게 되면 막걸리빵을 한 두개 더 챙겨놓았다가 더 힘든 친구에게 특별 배급해주기도 하고... 그렇게 시대와 잘 어울리며 재밌게 지내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날은 제가 부모가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가 되기 위한 수많은 지침서가 있고 또 필수인 시대지만 20여년 전에는 그런 것은 알아볼 필요가 없이 제가 살 아온 경험과 우리 부부의 부모님들이 저희들을 키우신 방법을 잘 조화시켜 반복재생해내는 것이 쉽고 빠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아 제가 우리 보모님의 교육을 답습한 그 첫번째가 바로 <조기 유학> 이었네요^^ 넵~~ 38년 전인 그 때 저희 부모님이 저희를 위해 무리해서 밀어붙인 것은 지금으로 치면 외국으로의 유학이나 다름없는 <도시로의 유학 >이었지요^^ 공무원이신 아빠를 따라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있던 시골 동네에서 초등 고학년이 된 언니 ( 우 재영의 엄마 ) 와 저를 묶어 어린 아이 둘이 새벽 4시 30 분 기차를 타고 부산 수영까지 초등학교를 다니게 하신 교육열 높은 울 어머니가 몇 년간의 기차 통학을 끝으로 중학교를 좋은 곳으로 보내겠다는 열망으로 아예 두 어린 자녀를 따로 살림을 내게 하였습니다 나이드신 할머니 한 분 묶어서요^^;;; 우리 할머니 ^^;;; 그 때의 기억들이 어찌나 강렬했던 지 자라는 내내 저에게는 하나의 나침반으로 새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 경험을 시작으로 아무 생각없던 제가 철이 든 시기가 바로 그 때가 아닌가 합니다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어 공부에도 집중하고 돈도 벌어 할머니 과자도 사드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용돈벌기에도 적극성을 띄었고 하여 독립심이라는 세 글자가 사춘기 무렵 제가 가진 특장점 중의 하나가 되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배우면서 터득해나간 두번째 제 교육 지침은 <독립심 >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는 시기부터 하여 저는 호시탐탐 제가 부모님께 물려받았던 교육의 기회와 방법을 실천해볼 시기를 노리고만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조기 유학의 정보를 준 최초의 사람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란 점에서 부모들의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그 자녀의 인생에 길게 영향을 미치는 지 다시금 부모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과 희생과 사랑이 필요한 지 깨닫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부모님께서는 골고루 두 분의 특징이나 장점을 물려 주셨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성적인 사고와 높은 교육열은 재영 엄마인 언니에게 물려 주신 것 같고 나머지 형제들에게도 제각각 특성들을 물려주신 가운데 왜 저에게는 유독 바느질 솜씨만 물려주셨는 지 가끔 원망은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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