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스쳐가는 웃음에도 기분이 좋아지고, 아이의 희미한 한숨에도 마음 졸이는, 부모 ! 저도 그런 부모입니다.
내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것은 몸과 마음이 다하는 한 해주고 싶은 그런 부모랍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그러하시겠지요.
이제 더 이상 미룰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기에 캐나다행을 결정해 놓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나네요.
아이를 보내는 날 아침까지도 전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가슴이 굵은 가시에 긁히는 아픔을 겪으며, ' 그 때 아마도 내가 미쳤었나 보다', '내가 잘하고 있나? 아직 안 늦었다. 비행기에 안 태우면 된다' 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성당에서 복사단 , 전례부 , 카톨릭 스카우트로 주말마다 부모보다 더 바쁜 아이, 학교와 성당의 그 좋은 친구들과 뛰 놀던 동민이, 사랑해주는 가족들, 성당의 많은 분들의 사랑을 멀리 하고 캐나다로 가는 것이 도대체 뭘 얼마나 얻겠다고 결정한 일인지 머리속이 전쟁이었습니다. 그 아침까지도!!!
그런 마음으로 공항까지 가서 이종원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일일히 모든 부모님 한 분 , 한분께 그 노란 모자를 벗으시며 인사하시던 모습, 2기 아이들 졸업사진 찍을 때 아이들의 매무새를 고쳐 주시던 멋진 선생님, 그 분이셨습니다. 도건우 선생님, 저는 그 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너무나 환하시고 어려보이셔서(?), 전 3기 담임 선생님이신지도 몰랐고 동민이도 아저씨, 아저씨 했으니까요 .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이종원 선생님께서 이제 들어 가시겠다며 다시 한번 모든 부모님께 노란 모자를 벗어 인사하시고는 아이들과 출국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들여 보내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애쓰던 모습, 유리문에 기대 하염없이 아이를 보고 있을 바로 그 때 , 눈이 마주친 아이는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였습니다. 또 다시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그 때 동민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차를 타고 돌아올 때 오선생님이 주신 문자 메시지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니 벌써.
우리 손에서 떠나간 아이들이 캐나다에 도착해 선생님 손에 닿기도 전에 날라온 메시지. 아니 비행기도 타기 전에 날라 온
메시지는 저에게 첫 감동이었습니다.
아신 걸까요? 리무진을 타고 빈 손으로 , 껍질만 남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이 어미의 심정을요.
그런데 돌아와서도 어찌나 문자와 게시판의 글 과 동영상을 많이 보내 주시는지 딴 데 정신을 쏟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 이동시 모든 일정에 맞춰 일목 요연하게 보내 주시는 선생님의 문자와 동영상에 밥 먹을 시간도, 슬퍼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누가 위로해 준다고 나오라고 해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미사도 새벽미사만 가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에 눈을 뗄 수 없어서요. 정말 이렇게 까지 많이 보내 주실 줄 몰랐습니다. 기대 이상입니다.
처음에 동영상을 볼 때는 아이의 눈빛 하나하나에도 신경이 쓰였지만 시간이 갈 수록 아이의 풀린 눈이 생기를 더해가고 여유로움이 더해질때 제 마음속 에 어두움이 모두 가셨습니다.
나중에는 아이 걱정이 아니라 선생님 걱정이 되었습니다. 새벽까지도 잠도 안 주무시고 계속 글 올리시고 동영상 보내주실때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부모님들 안심 시켜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선생님이 무슨 철인 이시라고.....
지금까지도 동영상, 게시판의 글, 문자메시지등 어찌나 많은 정성을 보내 주시는지 컴퓨터에 안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기분, 많은 부모님들이 아실 겁니다.
열 흘 , 저에게는 처음 하루 하루는 노심초사였습니다. 아이방을 정리하며 아이의 흔적에 내내 울기만 하고, 아쉬운 기억에 후회와 눈물 뿐이었습니다. 보내기 몇일 전부터 보낸 후 이삼일은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못잤지만 지금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저를 내내 힘들게 했던 그 가시의 고통은 이제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저를 위로해 줍니다.
가장 우려했던 홈스테이 문제, 삼촌이 제기 하셨던 혹시 아이가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안전 문제 . 모든 것이 OK입니다.
지금 동민이는 즐겁습니다. 아무리 유도 심문을 해도 돌아 가고 싶다는 얘기가 안나오고 , 첫 통화때 대성통곡을 할 줄 알았던 모자는 누구 하나 울지 않았으며 , 엄마의 욕심에 보냈다는 죄책감도 없으며 오히려 아이에게 당당합니다.
동민이는 엄격한 규율을 가진 홈스테이도 맘에 든답니다.
부모가 이것 저것 지적했으면 잔소리로만 들렸을 생활 습관들도 홈맘, 홈팜의 지도 아래 잘 자리잡고 있구요.
동생을 배려하는 경험도 할 것이며 , 엄마나 사촌 형들이 놀아 주었 듯 홈 브라더와도 잘 지낼 것입니다.
신앙심 깊은 홈맘, 팜과 같이 주일마다 성당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저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저는 숙제를 냈습니다 . 가능한 이야기인지는 모르나 할 수 있으면 거기서도 복사를 한 번 서 보라고.
올해부터 우리 성당에도 영어미사가 생기니 모든 기도문 영어로 잘 외워 오라구요.
홈 스테이를 하지 않았으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
OSS를 선택하기를 잘했답니다.
OSS로 아이를 보내지 않았으면 결코 느끼지 못할 이 뿌듯함, 이 기대감 .
저는 요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년 뒤 제 앞에 나타날 저의 아들을 그려봅니다.
저의 아들은 캐나다에서 살아 있는 학습을 체험하고, 건강하고 훌륭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될것이며, 국제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오선생님을 비롯한 OSS의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리게 될 것입니다.
와우! 생각만 해도 .........
아직 사랑 받아야 하는 시기라고 모두들 걱정하셨지만 , 품안에 끼고 좋은 것만 먹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바로 바로 해주고, 그저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 아이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그런 것만이 사랑이 아니기에 , 저는 후회하지않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항상 애정을 갖고 보는 22명의 아들, 딸들이 더 생겼고, 또 한마음으로 맺어진 부모님들과의 인연도 시작되었으며 열정적이고 정말 마음속으로 부터 애정과 감사의 마음이 나오는 선생님들과의 인연도 시작되었습니다.
휴! 어쩔뻔 했습니까 ? OSS에 안 보냈으면!. 제가 한 이 결정이 자랑스럽습니다.
더불어 저에게도 1년이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아마도 이 1년은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을 성숙의 시간이 됨과 동시에 저에게 '자기 돌봄' 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말은 동민이가 가기전 제가 했던 말입니다.
"동민 !!!!! OSS 에서의 이 1년이 네가 클때까지 줄 수 있는 엄마,아빠의 최고의 선물이란다."
오성식 2009-01-18 16:50:14
늘 OSS에 큰 믿음을 보여주시는 동민맘에게 감사드립니다.
매주 성당을 가는 일이 실제로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닌데, 참 좋은 홈스테이와의 인연으로
이곳에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한번쯤은 제가 한국성당에도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메이플리지에서 약 50분 정도 떨어진 써리라는 곳에 김대건 성당이 있습니다.
아주 큰 성당입니다, 저희 가족은 김대건성당에서 미사를 봅니다. 매주는 못 가지만요.
동민맘 2009-01-18 17:46:09
오성식 선생님 .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을 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보여 주신 열정과 사랑은 정말 놀랍습니다.
동민이가 선생님의 넘치는 에너지와 자신감을 배워왔으면 좋겠습니다.
호기맘 2009-01-18 22:06:38
아~~정말 속시끄러 못살겄네.
우리집은 카톨릭 신자일뿐이고 !매주 성당 잘 안나갈 뿐이고! 맨날 고해성사 하는 기분으로 살 뿐이고!
그래서 동민이네 생각만 하면 죄지은것 처럼 뜨금뜨끔할 뿐이고!
동민이 아빠 2009-01-19 10:47:35
호기어머니,,,속 시끄러울때는 위청수를 한병 까서 드세여^^,,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주말에 가까운 성지(예,미리내)나 횅하니 다녀오세요 그러면 하느님도 호기 더 잘 돌봐 주실거예요
동세맘 2009-01-19 11:50:38
난 홈피보는게 너무 즐거울 뿐이고~ 방금 진지한 전화 통화하다가 위청수땜에 웃을뻔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