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이가 영어를 능숙하게 하도록 하기위해서 어학연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을 하면서도 기러기를 하는 것이 싫고,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 몰라 사실상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유학원을 통하면 준비야 할 수 있지만, 아무 연고도 없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보낸다는 것은 모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히 보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죠.
그러다 작년 10월경 아내가 우연히 OSS에서 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에 대해 막연히 생각만하다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들으니 욕심이 나더군요.
우선 좋았던 것이
첫 번째는 기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오성식 선생님이 공인이라서 이름을 걸고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세 번째는 먼저 보내 본 선배 부모님들이 계셔서 검증이 되었다는 것
네 번째는 기숙형이 아닌 홈스테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캐나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
다섯 번째는 홈스테이형으로 갔을 경우 방과 후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하는 부모를 대신해서 캐나다 학교생활이나 한국과목을 체계적으로 챙겨준다는 것
여섯 번째는 홈스테이와 자녀사이에 어떤 특별한 상황이 생겼을 때 즉각적으로 세심하게 챙겨준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출국 일을 불과 2달 반 정도 남기고 캐나다 유학을 결심을 한 탓에 이것저것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빨리 흐르더군요.
출국일이 가까워오니 사실 승진이를 캐나다에 보내는 것이 잘 한일인가 하는 염려도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도 승진이가 캐나다문화를 체험하고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한 번도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었기에 가서 잘 적응을 할 것인지도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OSS를 믿었습니다.
출국 날 아내가 울어서 승진이가 마음이 약해질까 봐 울지 말 것을 몇 번을 다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출국 날에 공항에서 승진이를 보내기 위해 기다리는 데 기분이 울적하더군요.
그날 공항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데 아무리 웃으려 해도 웃음은 나오지 않고 눈물만 흘리지 않은 우는 얼굴을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4기 승진이 프로필에 보면 출국 날 가족사진이 없는 데 아마도 저 때문에 올리지 않았나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승진이가 드디어 출국장으로 들어갑니다. 인솔하시는 선생님들이 갑자기 애들을 줄 세워서 이별할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고 들어가더군요(지금 생각해보니 잘된 일인 듯).
그 순간 눈이 먹먹해지더군요. 승진이를 쳐다보니 승진이의 눈꺼풀이 빠르게 깜빡이더군요(승진이는 눈물을 참을 때는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입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제 눈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저는 옷소매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었습니다(내가 미쳤지, 이 어린애를 혼자 보낼 생각을 하고...).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그리고 출국장 어디에 한 구석이라도 승진이가 보일까봐 2층으로 달려 올라가 연신 출국장 내를 살펴보았습니다.
안 보이더군요. 눈물은 계속 터졌고 꺼이꺼이 울고 있는 저를 아내가 달래더군요.
아내는 하나도 안 울더군요. 오히려 승진이를 보내게 된 것이 너무 기쁘다고 했습니다.
대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울다가 자다가 울다가 자다가 제 눈은 물이 새는 호스 같았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뜻하지 않게 문자메시지와 동영상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캐나다 입국 상황부터 아이들의 상태를 담은 동영상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적응을 하고 있는 승진이의 모습을 보면서, 또 고난을 같이하는 같은 또래의 전우들이 있어서 마음이 살짝 놓이더군요.
그래도 아마 그 후 10일 정도는 틈틈이 눈물을 흘린 것 같습니다. 승진이가 쓰던 방을 들어갈 때나 승진이가 쓰던 물건들을 보면 더 눈물이 나오더군요.
아내와 저는 거의 하루 종일 캐나다에서 도착한 동영상을 몇 번씩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거의 동영상 폐인이 되었지요.
전반적으로 마음이 평온해지기 까지는 한 달여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지금은 승진이를 비롯한 4기 모두가 너무 잘 적응을 해서 캐나다에서 오래있고 싶다는 내용을 보면 빙긋이 웃음이 납니다.
지금은 5학년인 승진이를 보내고 7개월이 지났네요. 지금은 승진이를 보낸 것이 잘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한참 어린 3학년 승재를 5기로 또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 공항에 갈 때는 자그마한 수건을 준비했고, 수건은 요긴하게 잘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웃으면서 찍을 수 있었고요, 4기 때 한 번 겪어봐서 그런지 지금 현재는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기쁩니다. 두 형제가 캐나다에서 다정하게 찍은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서요...
승진아! 승재야!
캐나다에서 즐겁게 생활하고 건강하게 돌아와 주렴
사실 난 너희들이 너무나 부럽단다.^^
승진이와 승재의 아빠가
세린맘 2009-08-12 17:10:25
승진 승재, 서로 아끼고 챙겨주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5기로 승재 보내신 것도 정말 잘하신듯.
동민이아빠 2009-08-12 17:11:21
<<< 그래도 아마 그 후 10일 정도는 틈틈이 눈물을 흘린 것 같습니다. 승진이가 쓰던 방을 들어갈 때나 승진이가 쓰던 물건들을 보면 더 눈물이 나오더군요.
아내와 저는 거의 하루 종일 캐나다에서 도착한 동영상을 몇 번씩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거의 동영상 폐인이 되었지요.
전반적으로 마음이 평온해지기 까지는 한 달여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
사실 뜻밖이군요 전 승진이아버님 몇번 뵐때 너무나 평온하시길래 이럴줄 몰랐어요,, 부모 마음이 그렇죠?
승진승재팜 2009-08-12 21:37:20
세린맘, 저도 둘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민이 아부지 처음에는 많이 울었구요, 좀 지나고 승진이가 잘 적응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지금은 당근 평온하죠.^^ 언제 한번 대구 식구들 한번 모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