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아빠입니다. 출국한 후에 작성하는거라 "내가 경험한OSS"란 주제로 써야하나 걍 두서없이 쓰게 될것 같습니다~ 처음 아내에게서 아들 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그냥 남들이가는 일반적인(?)유학 또는 연수 개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별 생각없이 "알아서해요~"라고 대답을 하였지만 그 후에 들려온 말로는 아이 혼자 보낸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극심한 반대를 외쳤죠~ "아니~영어공부도 중요하지만,어떻게 제주도 가는것도 아니고 아이를 그 먼곳에 혼자 보낼 생각을 하냐여...." 솔직히 제 아내를 꼬드긴(?) 오성식 선생님 원망도 했었죠^^: 그렇게 적극적인 개입은 못하고 사이드에서 반대만을 외치며 시간은 흘러가고 아내는 나름대로 마음을 굳히고 척척 진행을 하였습니다. 저는 계획을 수정하고 틈만 나면 아들한테 조용히 얘기를 하였습니다~(엄마가 못듣고 있을만한 상황일때). "대호야~,캐나다 가고싶어?" "응~아빠 가고 싶어,가면 재미있을것 같아 영어 공부도 할 수 있구" "아빠생각엔 잠깐은 좋으 수 있어도 금방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질 터인데 그땐 어떻게 할려구?" "......."아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다가두 금새 "그땐 화상통화 하면 되지,화상통화 할 수 있다고 하던데?^^" 화상통화가 하고 싶어 캐나다에 가는 것도 아닌데 이놈이 마치 캠핑을 가는 기분인지 어쩐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수 일간에 이르는 작전은 실패로 끝나가고 출발 한달 전으로까지 시간은 흘렀습니다. 저도 이젠 어찌할 방법이 없는걸 깨닫고 나름대로 마음을 정리해갔지만 OSS에 대한 무지와 아빠로서의 불안감으로 근심만 쌓여 갔습니다. 출발 일주일전....마음이 참으로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게 마치 내가 아들한테,아내한테 만족스런 아빠, 남편이지 못해서 벌어지는 불행이 아닌가하는 감정적인 문제로 생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마음을 다스리고 그동안 아들이 원해도 내가 "귀찮다"하고 미뤄왔던 일들을 해야겠단 생각이 급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맘껏 태워주기" "원할 때 부루마블하기" "말 예쁘게하기""사랑한단 표현 마음것하기""먹고싶음 음식사주기""자기전에 듣고싶어하는 이야기 해주기"" 등등... 그렇게 몇일 하다보니 그동안 내가 내가 몸이 힘들다 어쩌다하며 무심하게 지나갔던 행동들과 말들이 울아들 대호에게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깨닫기 시작 했습니다. 제가 아들하고 놀아주고 있는것이 아니라 울 아들이 이 못난 아빠하고 놀아주고 있었다는 "놀라운!!"발견도 하게되었습니다. 제가 아들과 교류함으로 힘을 얻고 축복을 받고있는 부분이 훨~씬 많이 있었다는 사실... 후회스러웠습니다.. 조금만 더 일직 깨달었어도 출국 전에 더 많이 사랑해주고 사랑받고 했을터인데... 마음이 너무도 아퍼왔습니다. 사랑스러운 울아들 대호 "나이답지않게 아빠를 너무도 챙겨주고 생각하던 울 아들" 출국 이틀 전부터 아내 몰래 아들 몰래 혼자 샤워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출국날이되고 아들과함께 차를타고갈때 아들이 "아빠 수염깎았어?"하며 자기 얼굴을 제 턱에 부비며 마치 당분간은 못 보게 될 저를 위로하는듯한...사랑을 배풀어(?)주었습니다. 표현은 못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울아들의 아빠에대한 사랑...마음속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출국시간이 다가오고 이종원 선생님의 "모이세요"하는 말이 떨어지자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듯한 생각이 들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아들을 쳐다보자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지 입술을물며 하는을 쳐다보고있는 대호의 얼굴이 보였습니다..그 모습을보고 제 아내가 "대호야~울고 싶으면 울어도돼"하며 달래 주었습니다 . 그제서야 보이는 울아들의 눈물...하늘이 무너져 내리는듯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돌아오는길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이 터질것같은 감정과 더 잘해주고 보내지 못했던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아버님도 저 때문에 이렇게 가슴아픈 눈물을 흘리며 살아갸셨겠구나..."하는 생각이 지금에 와서야 들었습니다. 대호를 통해서 아버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대혼 너무도 제 멋대로, 감사한지도 모르고 살아가고있는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몇일 동안은 정말 "폐인"이라는 말이 맞을정도로 힘이 쭉 빠져있는 생할을 하였지만 대혼 우려와는 달리 지금까지는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하고 있는 단계인것 같습니다. 특히 안절부절 못하고있는 저에게 많은 위로를 주신 오성식 선생님, OSS분들,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OSS가 아니었담 이토록 "위험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아주 많이 힘들어 했을것 같습니다. 특히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캐나다 현지 소식과사진은 저에게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고 또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OSS가 있기에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됨을 조금의 거짓도없이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든 아들 딸들 지금처럼 사랑으로 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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